
1949년 출생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벌써 74세 나이가 된 배우 박원숙.
현재에 와서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 든든한 맏언니로서 활약을 하며 친숙한 이미지로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그런 박원숙이 최근 뜻밖의 연락을 받고 그야말로 까무라칠 뻔했다는 소식입니다.
바로 20년간 사라졌던 자신의 유일한 혈육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기 때문인데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요?
박원숙이 첫남자와 사고치고 산으로 올라간 사연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한 연기자로서 그리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방송인으로서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는 화려한 인생을 살았을 것만 같은 박원숙 씨
하지만 알고 보면 그녀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박원숙의 기구한 인생사는 그녀가 대학교 1학년 새내기 시절, 후에 남편이 되는 2살 연상의 서모 씨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시작되는데요.

두 사람은 대학교 YMCA 드라마 모임에서 만나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고, 달달한 연애를 이어가던 어느 날 통행금지 시간에 걸려서 여관에 묵게 되었는데 바로 이 날 박원숙 씨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인데 전혀 뜻하지 않았던 임신, 요즘이라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겠지만 당시에는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정도의 망신이었다고 하는데요.
박원숙은 이대로 ‘아예 산으로 들어가 버릴까 차라리 죽어버릴까’ 고민까지 했다고 하며, 박원숙 씨의 할머니조차 “같이 뛰어내려서 죽자”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박원숙 씨는 첫 남자이기도 했던 서모 씨와 만난 지 고작 7개월 만에 혼전 임신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요.
이후 어쩔 수 없이 대학교는 중퇴하였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였기에 그녀는 임신한 만삭의 몸을 이끌고 mbc 탤런트 공채 1기 모집 현장에 찾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박원숙 씨의 모습을 본 심사위원들은 “집에 가서 애나 낳으라” 라며 핀잔을 주며 돌려보냈고 이에 박원숙씨는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소중한 첫째 아들을 낳은 후에 박원숙 씨는 mbc 공채 탤런트 2기에 당당하게 합격하여 고대하던 정식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요.
뜻하지 않게 인생에 위기를 겪는가 싶었지만 이를 무사히 잘 넘긴 박원숙 씨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뒤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박원숙이 남편과 두번이나 이혼했던 충격적인 이유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던 박원숙 씨의 남편은 결혼 후 본격적으로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배우는 것과 현실에는 큰 차이가 있었는지 손을 대는 족족 남편의 사업은 실패하였고, 돈을 벌기는커녕 박원숙 씨가 모은 돈을 탕진하는 꼴이었죠.
아무리 박원숙 씨가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으며, 결국 두 부부 점점 다투는 일이 잦아지더니 합의 이혼까지 하게 되죠

그렇게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의 몸이 된 박원숙 씨, 그러나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인지 이혼 3년 만에 전 남편과 다시 재결합을 하였는데요.
그런데 이 남편 무슨 생각인지 알고 보니 따로 만나는 여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를 알게 된 박원숙 씨 재혼 6개월 만에 다시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전과 달리 아들을 직접 키우겠다고 데리고 온 박원숙 씨였습니다.

남편의 여자 계모 밑에서 키울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여자 혼자의 몸으로 자식을 키워가던 박원숙 씨 그러던 중 아르헨티나 교포 출신 사업가인 김 모 씨를 만나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요.
문제는 이 김 모 씨 역시도 사업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끝내 박원숙 씨의 명의로 여기저기 빚을 지고 부도를 낸 남편 덕분에 연예계 활동을 하며 모은 돈 전 재산을 날리는 건 물론 엄청난 빚까지 지게 되는데요.

채권자들이 돈을 갚으라며 방송국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기 일쑤였으며, 최근까지도 드라마 출연료를 압류당해야 했던 박원숙 씨였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결혼마저도 실패하게 된 박원숙 씨 본인의 연예계 일 말고는 뭐 하나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나올 사건에 비하면 이런 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박원숙에게 찾아온 끔찍한 비극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아들을 잘 키워냈었던 박원숙 씨.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 촬영 중 아들이 조금 다쳤다는 연락이 오게 됩니다.
이에 박원숙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병원에 찾아갔으나, 그곳에는 아들의 친구가 울면서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금 많이 다쳤나?’ 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잠시 뒤 이미 사망하였다는 아들의 상태를 듣고 이게 진짜가 맞는지 혹시 드라마 촬영하는 것은 아닌지 전혀 실감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들의 사망 이유는 교통사고로 외주 방송 제작사의 pd로 일하고 있었던 아들이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경사로에서 화물차가 덮쳐 사망한 것입니다.
화물차 운전자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제대로 채우지 않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화물차가 경사로에서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가 사람을 쳐버린 사건.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아들의 죽음에 박원숙 씨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박원숙은 의사가 아들의 사고 부위를 이야기할 때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었다고 하며, 때문에 지금까지도 아들의 자세한 사망 원인은 모른다고 합니다.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은 그야말로 박원숙 씨의 모든 것이었기에 이전까지의 불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절망감을 넘어 허무함을 느꼈으며, 결국 홀로 경남 남해로 내려가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연락을 받고 박원숙 씨는 그야말로 까무라칠 뻔합니다.

바로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라는 손녀 딸의 연락이었는데요.
알고보니 세상을 떠난 아들은 한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였고 그 사이에서 딸을 하나 낳았었습니다.
당연히 박원숙 씨도 이를 모르진 않았지만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며느리가 아이를 데리고 재혼을 한 뒤 연락이 끊어졌기에 무려 20년 가까이 손녀를 보지 못하고 홀로 속앓이만 했던 것입니다.

박원숙 씨는 혹시라도 주변인을 통해서 연락이 올까 봐 그동안 전화번호조차 바꾸지 않고 있었다고 하며, 그렇게 꿈에 그리던 손녀 딸을 거의 20년 만에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대학교 졸업을 앞둔 어엿한 숙녀가 되어버린 손녀 딸은 할머니가 배우인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이제 더는 바랄 게 없다는 박원숙 씨 이후 그녀는 전보다 더 밝아진 모습으로 예능 방송 등에서도 활약하고 있는데요.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해 결혼에 실패하고 소중한 아들마저 잃었지만 이제는 손녀 딸을 멀리서라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에 소중한 행복감을 느낀다는 그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