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현미 씨의 사인이 결국 경찰 수사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그녀는 평소 발목이 매우 약했다고 하는데 사건 당일도 아픈 다리로 인해 비틀거리며 걷던 중 하필 싱크대 앞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지게 된 것이죠.

만약 누군가 넘어진 그녀를 발견해 제때 신고해 주었다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현미 씨는 그 무렵 혼자 지내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 너무나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실 몇해 전부터 현미 씨는 극심한 생활고에까지 시달리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한때 대한민국을 울리고 웃겼던 명가수의 외롭고 쓸쓸한 죽음에 담긴 가슴아픈 진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상습 고액 체납자 명단에 현미 이름이 올라간 충격적인 이유
지난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상습 고액 체납자 명단에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가수 현미씨의 이름이 올라 있었습니다.
공단에 따르면 그녀가 미납한 금액만 무려 1500만 원에 달했다고 하죠.
하지만 평생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그녀였기에 세금 체납에 고의성이 의심되어 여론은 좋지 않게 흘러갔는데요.

알고보니 그 무렵 현미 씨에게는 약 7억원의 부채가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현미 씨가 생활고를 유발할 정도로 거액의 빚을 지게 된 이유는 지인들로부터 경제적인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었죠.
돈이 필요하다 라며 부탁해 오는 이들에게 한 치의 의심 없이 돈을 빌려주었다가 끝끝내 돌려받지 못하는 등 사기를 수차례 당한 뒤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집에 도둑까지 드는 등 악재의 악재가 겹치며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미씨는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며 행사 스케줄을 소화했으며, 심지어 나중에는 매니저에게 월급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자 스스로 운전면허까지 취득하며 가수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현미씨는 생전 주변인들을 아낌없이 돕고 후배들을 위해서 갖은 지원을 베풀어 왔는데요.
정작 그녀가 힘들 때에는 그 누구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전전긍긍 해야만 했다는 사실에 대중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현미씨에게도 목숨과도 바꿀수 없을 만큼 소중한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들은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후회하며 현미의 유골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모실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이들은 어찌하여 이토록 먼 곳에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현미가 자신의 두 아들을 호적에도 올리지 못한 가슴아픈 이유
아시다시피 현미는 재즈 섹소폰 연주자이자 천재 작곡가였던 고 이봉주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죠.
여기에는 충격적인 사연이 숨어있습니다.
현미는 사실 이봉조와 사귀던 중 혼전임신으로 인해 첫째 아들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도 생겼겠다 결혼식을 올릴 날짜만을 기다리던 현미는 임신 8개월 차였을때 ‘내가 이봉조의 부인’이다라며 찾아온 한 여인과 만나게되는데요.
알고 보니 이봉주 씨는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꽁꽁 숨긴 채 현미 씨를 만나온 것이었죠
하지만 이봉주 씨는 ‘전 부인과는 이혼하려던 참이었다’ 라며 이혼 서류까지 꺼내놓고 현미 씨를 설득했고, 결국 현미 씨는 어쩔 수 없이 이봉조 씨를 다시 믿어주며 15년의 세월 동안 두 아들까지 낳고 기르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에게 충격적인 전화 한통이 걸려왔는데요.
스스로를 현미 씨의 오랜 팬이다라고 소개한 이는 ‘더 이상은 현미 씨가 속는 것을 가만 두고 보지 못하겠다’라며 ‘전처와 이혼을 한 줄 알았던 이봉조 씨가 여전히 본처는 그대로 둔 채 현미 씨와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폭로한 것입니다.
결국 참지 못한 현미가 이봉주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이에 이봉주 씨는 오히려 그녀를 위협하며 ‘너와 못 살 거면 같이 목숨을 끊어버리겠다’라는 협박까지도 서슴치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현미 씨는 이봉주 씨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간 그와 함께 살며 모아온 수천만 원의 돈을 모두 뒤로 한 채 아들 둘의 손만 붙잡고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로 이봉조 씨는 현미씨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들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까지도 없는 셈 쳤다고 하며, 아들들을 자신의 호적에도 올려주지 않은 탓에 아버지로부터의 경제적인 지원을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미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장으로서 1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홀로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는데요.
그러던 어느날 현민 씨에게 들려온 가슴아픈 소식에 그녀는 또다시 무너지고 맙니다.
현미가 남긴 가슴아픈 마지막 말은?
남편 없이도 꿋꿋하게 살아가던 현미는 어느날 ‘봉조가 많이 아프다,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 라는 비보를 듣게 됩니다.
현미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13년간 연락을 끊고 살던 전 남편의 거처로 찾아가게 되는데요.
당뇨와 합병증으로 인해 치아까지 모두 빠져 틀니를 낀 상태로 애달프게 섹소폰을 불고 있는 전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현미는 오열하며 무너집니다.
사실 이봉조는 현미 씨와 헤어진 이후 그녀를 매우 그리워했다고 하는데요.

그는 현미 씨와 헤어진 뒤 본부인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대신 이후 쭉 홀아버지로 살며 두 여인에게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죠.
이에 현미 씨는 ‘안 되겠다. 이제부터는 내가 이 양반을 돌보겠다’라며 이봉주 씨와 다시 살림을 합칠 결심을 하지만 하늘은 그들의 사랑을 끝끝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재회가 있고 불과 며칠도 지나지 않아 결국 이봉주 씨가 세상을 떠나고야 만 것이죠.
이에 현미 씨는 ’56세라는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것도 너무 가슴이 아픈데 마지막 순간까지 혼자였다는 게 더더욱 나를 슬프게 만든다’라는 말을 하며 후회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봉조가 떠난 뒤 현미 씨는 오래도록 우울증을 앓으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하네요.
많은 사람들은 현미 씨가 가족을 버린 이봉조 씨를 조금은 미워하지 않을까 하고 짐작했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 원수가 어딨고 적이 어딨냐’라며 ‘이봉조 씨는 내게 15년 동안 든든한 남편이었고 내게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안겨준 사람이며 평생 부를 노래를 선물해 준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을 어찌 미워하겠는가’ 라는 말로 그의 잘못을 모두 용서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생에서 이봉조 씨로 인해 너무나 큰 마음고생을 해야 했던 현미 씨.
부디 지금쯤 하늘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지난 회포를 모두 풀고 아픈 인연을 잘 정리하고 있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