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날, 드라마나 영화같은 매체의 힘은 놀라운 수준을 넘어 무섭다고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인데요.
이런 매체들의 힘으로 악인이 위인으로 평가되거나 진실이 왜곡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2001년 방영했던 KBS 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인공 ‘명성황후’를 꼽을 수 있죠.

극중에서 명성황후는 일제강점기 직전의 조선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애국정신이 투철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덕분에 이 드라마는 많은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며 크게 흥행했고 ‘내가 조선의 국모다’ 라는 명대사까지 남기게 되었죠.
이 드라마로 인해 명성황후는 일본에 점령되어가는 조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위인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는데요.
과연 현실도 그랬을까요? 우선 명성황후는 그녀가 죽고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부여된 칭호이며 당대에는 민비 등으로 불렸는데 살아있을 때부터 평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초반부터 세도정치의 부패와 혼란으로 조선이 본격적인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섭정을 맡으며 어느 정도 정리되는 모습을 보였죠.
그러나 고종의 친정 이후 민비의 일족, 흔히 민씨 척족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세도정치기와 다를바 없이 주요 관직을 민씨들로 독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문에 매관매직과 온갖 부정부패로 재물만 긁어모아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지탄을 받았죠. 당연히 그 중심에는 민비가 자리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에는 외국군대인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자국 군인들과 백성들을 사살하게 하는 등의 악업을 저질렀는데요.
또 이후 외세의 본격적인 간섭에 큰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궁궐에 무당 등을 불러들여 굿을 하는 등의 헛짓으로 국고를 거듭 탕진하기도 했죠.
위에도 적었지만 이미 민비와 같은 시대를 살던 조선인들 사이에서 민비는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못하던 왕비였습니다.
임오군란 등의 예를 봐도 알 수 있듯 조선백성들에게 끌려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인물이죠. 그럼에도 민비가 미화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일본의 간악한 수법으로 인하여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키려 노력한 왕비로 미화되기 시작했죠.

실상은 본인과 일족의 권력유지와 부귀영화를 위한 노력에 불과했으나 말입니다. 한동안은 매체의 영향으로 미화된 민비의 모습을 잘못 알고 애도하는 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등의 발달로 당대의 실제 평가 등을 알게되며 그 실체를 뒤늦게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워낙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강하다보니 여전히 미화된 이미지 그대로를 믿고 있는 이들도 적지않게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