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재지변을 비롯한 대규모 사고현장은 때로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2월, 지방의 중소규모마트에서 일을 하는 정씨는 다정하고 착실한 남편과 함께 두 딸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하루종일 마트에서 손님들과 고된 노동에 시달릴때도 집에서 자신을 반겨주는 딸들과 남편덕분에 소소하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던 정씨는 전 날 늦게 잠을 이룬 탓에 일을 하는 내내 극심한 피로가 몸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정씨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중간 휴식 및 교대시간을 이용하여 숙직실에서 새우잠을 청했는데요.
정씨가 잠을 청한지 얼마되지않아 마트 창고에서 화재 경보 버튼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도 오작동이 잦았기에 직원들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담당자가 창고에 들어서는 순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데요.
퀘퀘한 연기와 함께 이미 걷잡을 수 없을만큼 화재가 치솟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삽시간에 마트로 화재가 번질것을 예상한 담당자는 마트내에 있는 모든사람에게 방송을 통해 밖으로 대피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수차례 진행된 이 방송은 정씨에게는 전달 되지 않았는데요. 숙직실에서 쉬는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방송장비가 미설치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재가 나고 꽤 시간이 지난 뒤, 마트의 모든 직원이 대피했을 무렵 정씨는 심한 두통을 느끼면서 숙직실에서 일어났습니다.
퀘퀘한 연기가 자욱한 것을 보고 큰 일이 났구나 생각한 정씨는 서둘러 숙직실을 나갔으나 이내 벌어진 상황에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미 출입구쪽을 비롯하여 마트 전체가 활활 불타고 있어 정씨가 나갈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다시 숙직실로 들어온 정씨는 자신이 여기서 살아나가기 힘든 상황임을 직감했습니다.
너무나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정씨를 지배한 것은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두 딸아이에 대한 걱정이었는데요.
정씨는 순간 핸드폰을 열고 가족들이 있는 단톡방 메세지를 확인했습니다. 단톡방에는 오늘 저녁 메뉴를 물어보는 둘째아이의 메세지가 와있었습니다.
정씨는 정신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또박또박 한 글자씩 단톡방에 입력했습니다.

해당 메세지를 확인한 가족들은 계속해서 정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기약없는 통화연결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씨는 위 연락을 끝으로 영영 가족들과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사랑하는 가족품을 그리워했던 안타까운 모습으로 말이죠.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참사에 정씨의 가족들은 그저 오열하고 슬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삶의 최전방에서 항상 가족을 사랑했고 마지막까지 가족을 그리워했던 정현심씨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