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아이유의 충격적인 결말” 생방송 도중 뛰쳐나가더니 산으로 올라가 머리깎고 스님이 된 여자 연예인

한때 노래 한 곡에 집 한 채 값을 받을 정도로 인기 스타였다가 갑자기 한순간에 스님이 된 여자 연예인이 있습니다.

1984년 데뷔 앨범 ‘소녀 시절’을 발매하며 가수 이선희와 나란히 kbs 가요대상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그녀는, 청순한 외모에 시원한 가창력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사 실력까지 겸비하여 대중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되었는데요.

지금으로 따지면 아이유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다고 할 정도로 당시 인기가 정말 대단했다고 하죠.

그러나 2023년의 아이유는 국민가수가 된 반면, 사연의 주인공인 이경미는 도망치듯 산으로 올라가 스님이 되어야만 했는데..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80년대 아이유, 이경미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80년대 아이유, 이경미

이경미는 1980년 친구와 남산 등반을 하다가 한 방송 관계자의 눈에 띄어 출연 제안을 받았고, 연기자를 목표로 광고 모델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 음료 광고에 등장한 상큼한 이미지를 가진 귀여운 외모의 여고생은 단숨에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그 후로 음료, 약품, 신용카드, 화장품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광고 한 편당 당시 집 한채 값인 1천만 원 정도를 받았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경미의 인기와 이런 다재다능함은 그녀에게 결코 행복만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는데요.

이경미의 인기가 전성기라 불릴 만큼 좋았던 1986년 어느 날, 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100분 쇼에 출연하려고 대기 중이던 그녀가 홀연히 사라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잠적이었기에 충격적인 루머까지 떠돌게 되었으며 소속사, 방송사, 관계자, 가족들까지도 그녀를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경미의 이런 잠적은 처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경미가 겪은 충격적인 사건

그녀는 18살에 시작된 연예계 생활로 마음의 병을 얻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특히나 그녀를 힘들게 한 건 주변에서 여자 연예인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흔히 밤무대라고 불리는 업소에서 노래를 하고 나면 와서 자리에 앉았다 가라라는 메시지가 와서 불려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마치 자신이 꼭두각시 노리개처럼 느껴져 자괴감이 일어났다고 밝혔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흔히 궁정동이라 불리는 정재계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에 불려가 노래를 하는 한편, 희롱까지 견뎌야 했다고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절을 찾기 시작한 이경미는, 어느 날 문득 연예계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에 그녀는 절에 들어가 종교에 귀의하고자 머리를 깎고, 수도자의 길을 걸으려고 결심을 하게된 것이었죠.

스님이 되기 위해 처음 머리를 밀고나서는 너무 좋아 춤을 추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난이 있었던 건지 짐작할 만 한데요.

하지만 그런 그녀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이경미를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머리를 깎은 그녀를 찾아내 가발을 씌워 다시 방송에 출연시키기도 하고, 나중에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감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경미 씨의 어머니는 그녀가 있던 절에 큰스님 멱살을 잡고, 절에서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다는데요.

딸이 잘 나가는 가수에서 갑자기 스님이 된다는 사실은 가족들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테지만, 가족들의 이러한 행동에는 다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경미 가족의 수상한 행동

그것은 바로 이경미가 7남매의 장녀로서 그동안 가장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녀의 잠적은 가족에게는 생계의 위기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가족들의 강요에 이경미 씨는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잠깐 환속하여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배우 김혜수가 출연한 사모곡의 주제곡을 부르며, 그녀의 가수로서의 인기와 입지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는데요.

하지만 1991년쯤, 더 이상 가족들 때문에 떠밀릴 수 없었던 그녀는 다시 한 번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될 것을 단호히 밝히며, 한 번만 더 찾아오면 죽어버리겠다는 선언까지 했다고 합니다.

목숨을 건 투쟁으로 비로소 그녀가 원하던 삶을 살 수 있게 된 이경미는 그 후 3년간의 수행을 거치고 승가대학을 졸업하며 법명 보연 스님으로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3년간의 수행 기간 동안이 너무 고됐기 때문에 몸도 많이 상했지만, 마음만은 평안해졌다는 그녀는 더 밝은 얼굴로 변했는데요.

보연 스님이 된 이경미는 1999년 그의 자전적 소설인 사례를 출간하며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돌아보았으며,

같은 해, 천안에 부처님 마을이라는 장애인 시설을 설립하며 6여 년간 장애 아동들을 돌보는 삶을 살며 비구니 엄마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하네요.

한때 모두의 사랑을 받던 스타에서 이제는 수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보현스님, 진정한 깨달음과 평화를 얻은 만큼 더 이상의 고난은 찾아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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